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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편승 교수의 교회사의 산책

네비우스(Nevius) 선교정책 상세보기
네비우스(Nevius) 선교정책 추천하기
작성자관리자 조회수1,463건 추천수3건 작성일자2014-08-01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들에 의한 선교정책은 네비우스(Nevius) 선교정책이었다. 네비우스 선교정책이란 초기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선교사들은 대개 신학교를 갓 졸업하고 한국에 온 사람들로서 목회경험이나 선교사로서의 경험은 전무한 형편으로 오직 선교의 열정 하나만 갖고 현지에 왔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한 선교지에서의 처녀 선교사역이란 생각처럼 그렇게 용이한 일이 아님을 곧 깨닫게 되었다. 이 문제를 가장 깊게 느낀 사람은 언더우드(H. Underwood)였다. 그는 몇 차례 본국 교회의 해외 선교본부에 경험 많은 선교사를 한 사람 보내어 그로부터 선교의 경험과 선교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선교본부는 그의 요청을 받고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오랫동안 하면서 선교방법론에 대한 탁월한 논문을 계속 연재하고 있던 네비우스 선교사를 한국에 가도록 조치하였다.

 

이에 따라 네비우스는 부인을 대동하고 18906월 한국에 오게 되었다. 그는 2주간을 한국에 머물면서 이곳에 있는 선교사들을 모아 놓고 선교전략과 방법론을 강론 하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네비우스 선교정책(The Nevius principle or method)이라는 것이다. 선교사들은 이 방법을 곧 한국선교 현장에 적용시켜 실천함으로서 이 정책으로 인해서 한국 교회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고, 이 방법이 오늘의 한국 교회를 있게 한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선교사들 개인은 폭넓은 순회선교를 통하여 전도한다 

(2) 자립전도 : 신자 각인은 타인의(복음의) 선생이 된다 

(3) 자립정치 : 모든 그룹은 봉급 받지 않은 지도자들과 봉급 받는 조사(助事 : Helper)들 이 후에 각 지역과 전국적인 지도자를 만들기 위해 훈련한다 

(4) 자립보급 : 모든 교회는 신자들 자신들의 힘으로 건축되어야 한다. 설립되면 조사들의 봉급을 책임진다. 목사들의 봉급은 결코 선교사들의 보조에 의존하면 안 된다 

(5) 모든 신자들은 그들의 지도자, 조사들에 의해 조직적인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 그 지도자들과 조사들은 성경반(Bible Classes)에서 공부해야 한다.

(6) 성경에 규정한 벌칙에 따라 엄중한 훈련과 치리를 해야 한다 

(7) 다른 단체 교회들과 긴밀한 협조와 연합을 해야 한다. 적어도 지역을 분할해서 일한다 

(8) 소송문제 같은 것은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9) 가능한 한도 내에서 사람들의 경제면에서는 서로 협력해야 한다.

 

이 네비우스 선교정책은 보통 줄여서 삼자정책(Three Self Principles)이라고 부른다. 즉 자치(自治 : Self-Government), 자립(自立 : Self-Support), 자전(自傳 : Self-Propagation)이다. 3자 원칙은 원래 영국 후즈필드(Huddesfield)교구 목사였던 헨리 벤(Henry Venn)의 선교이론에 근거한 것으로, 외부에 간섭을 받지 않고 교회를 운영한다는 것과 원조 받지 않고 자기 교회를 운영한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 전도한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이 원칙의 핵심에는 차세적(此世的)생활과 의무에서의 둔퇴가 종교의 본분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평범한 통상의 생활을 하면서 교리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기독교의 참모습이라고 설파하는 정신도 깔려 있었다. 그런데 이 원칙을 함께 예의 연구해서 한국 교회에 적응할 가능성을 연구한 것이 바로 한 해 전(1889)에 조직된미국 북장로회 미션 및 빅토리아(호주)미션 연합 공의회의 불참으로 장로교만이 선교 연합 기관을 조직했던 것이다. 이것이 교회 연합 기관으로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것이었다. 호주의 데이비스가 서거한 뒤에는 다시 1893년에 장로회 정치를 쓰는 미션 공의회”(The Council of Missions Holding the Presbyterian Form of Government)를 조직하였다. 이 공의회의 목적은 한국에서 프로테스탄트 신경(信經)과 장로회 정치를 쓰는 연합 교회를 궁극에 가서는 설립한다는 것이었는데, 이 공의회는 그 소속 선교회에 대하여는 권고 만 할 수 있었지만 한국의 장로교회가 완전히 설립되기까지는 한국의 전 교회에 대해 전권치리(專權治理)할 수 있는 유일한 상회(上會) 구실을 했다.

 

이 공의회가 남긴 중요한 업적이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선교 지역의 분할 정책이다. 소위“Comity Arrangements"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선교 기관이 여럿이기 때문에 노력을 중복하거나 필요 없는 경쟁을 하지 않도록 연합적으로 분할하는프로그램이다. 연합해서 피차 협조하려면, 하는 일과 지역을 분할해야만 할 때가 있다. 얼마 후 에큐메니칼 운동은 이 원리를 그 기본적인 원리로 삼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남장로교는 전라도와 충청도, 호주 장로교는 경상남도, 캐나다 선교회는 함경도, 북장로교는 평안도, 황해도 및 경상북도를 분할하여 맡았다. 그런데 1892611일에는 북장로교와 북감리교가 그 신앙과 교리의 경계선을 헤치고 합의를 거쳐서 한국의 전 지역을 지리적으로 분할 책정하게 되었다. 원칙적으로 5천명 이상의 읍() 정도 이상의 지역에서는 두 교파가 함께 선교하지만 그 이하의 지역에서는 기득권을 피차 인정한다는 선에서 지역 분할을 실시했던 것이다.

 

이 결의사항을 한국을 방문한 포스터(R.S Foster) 감독이 시인하지 않아서 당분간 곤란이 있었으나 결국 이 안의 추후의 사업에 골격 노릇을 한 것은 사실이다. 현대에 와서 이지역이 뜻밖에도 한국교회 분열의 지방적 배경과 대체로 상통(相通)한다는 비극적인 사실을 간과할 수 없겠으나, 연합이 프로그램의 특징 있는 다양성의 개별적 분할에서 더 심각하게 초래된다는 사실도 고려해서 차라리 신앙 형태와 신학 방법의 특징있는 개별성이 그대로 연합의 참 요소라는 것을 알고 지나가는 것이 좋겠다.

 

첫째로, 이 공의회는 저 유명한 네비우스 방법을 소지(素地)로 하면서도 핵심적인 몇 가지 원칙을 첨가 확대해서, 한국에서의 선교 정책을 마침내 정식으로 채택하게 된다. 그것을 여기 밝히면 다음과 같다.

 

(1) 상류 계급보다는 근로 계급을 상대로 해서 전도하는 것이 좋다 

(2) 부녀자에게 전도하고 크리스챤 소녀들을 교육하는 데 특별히 힘을 쓴다. 가정주부들, 곧 여성들이 후대의 교육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3) 기독교 교육은 시골에서 초등 정도의 학교를 경영함으로써 크게 효력을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학교에서 젊은이들을 훈련하여 장차 교사로 보내도록 한다 

(4) 장차 한국인 교역자도 결국 이런 곳에서 배출될 것이다. 이점을 유의하고 있어야 한다 

(5) 사람의 힘만이 사람을 개종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신다. 따라서 될수록 빨리 안전하고도 명석한 성서(번역된 성서)를 이 들에게 주도록 해야 한다 

(6) 모든 종교 서적은 외국 말을 조금도 쓰지 않고 순 한국말로 쓰여 지도록 하여야 한다 

(7) 진취적인 교회는 자급(自給)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선교사의 도움을 받는 사람의 수는 될수록 곧 줄이고, 자급하여 세상에 공헌하는 그러한 개인을 늘여야 한다 

(8) 한국의 대중들은 동족의 전도에 의해서 신앙하게 되어야 한다. 따라서 전도를 우리 자신이 나서서 하는 것 보다는 전도자의 교육에 전력해야 한다 

(9) 의료 선교사들은 환자들과 오래 친숙하게 지냄으로써 가르칠 기회를 찾게 되고, 또 깊은 마음의 문제에 골몰하는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시약(施藥)만 가지고서는 별 효과를 낼 수 없다 

(10)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사람은 고향의 마을에 자주 왕래하게 해서 의료 선교사들의 인애에 넘치는 간호의 경험을 본받아 전도의 문을 열도록 해야 한다.

 

이 방법은 한국 교회의 발전뿐만 아니라, 그 신앙의 형태라든가 교역자의 지속적인 수준, 교회의 조직에 대해서 무시못할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장차 한국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여러번 그 공과가 문제되기도 하였다.

 

이상에서 열거한 네비우스 정책을 언더우드는 그의 책 한국의 부름(The Call of Korea)에서 다음의 네 가지로 압축시켰다.

 

(1)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처해 있는 일터에 남아서 자신의 일을 하면서 자활(自活)해야 하며 자신의 언행(言行)으로 이웃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2) 교회의 방법들과 기구(機構)는 한국 교회가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만 발전되어야 한다 

(3) 교회는 최선의 자질을 갖추고 교회가 지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서 정식 사역자로 일하게 해야 한다 

(4) 예배당은 토착적인 모양과 기독교인들 자신의 재원을 가지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건축되어야 한다.  

 

이상에서 열거한 것 가운데 네 번째인, 예배당은 토착적인 모양(native style)으로 건축되어야 한다는 점은 중요한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인들이 예배당을 지으면서 한국 건축 양식에 따라 지은 사실을 미국 북감리교회의 1894년 연례보고서에서도 볼 수 있다. 선교사들은 인천에 한국 교인들이 처음으로 예배당을 세운 사실을 보고하면서 한국식 예배당을 건립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런 예는 선교사들이 한국 고유의 문화를 깨뜨렸다는 소위 민족주의를 고창한다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 과연 선교사들이 예배당을 서양의 건축 양식대로 지으라고 했는지 아니면 한국 고유의 양식으로 지으라 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의 선교 정책은 참으로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한국 장로교회의 선교정책을 적시(摘示)하고 있다. 노동계급, 부녀자 전도 같은 것은 한국적 상황을 가장 확실하게 꿰뚫고 있는 점이며, 특히 조선 국문은 세계 엇던 나라글자보담도 제일 배호기 쉬운 글인 고로라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순 한글로 된 서적의 보급, 성경의 보급 등은 바로 한국교회가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고 판단된다. 뿐만 아니라 대중 중심의 네비우스 선교 정책은 한국 사회를 근대 시민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전기를 마련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절대 왕정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 즉 민주주의 국가 체제로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네비우스 정책 중 자급(自給), 특히 의존심과 사대사상이 강했던 한국민들에게 남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립정신을 갖게 한 것은 한국 교회 발전에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특히 교회의 재정적 자립을 위해 교인들이 헌금을 열심히 한 일은 외국에도 널리 알려져 한국 교회의 진솔한 모습으로 소개되었다. 자기들이 예배드릴 예배당을 건축하는 일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골의 부인들이 자기 옷이나. 곡물, 심지어 반지, 비녀, 노리개 등 귀금속까지 스스럼없이 바치는 모습이 자주 보도되었다장로교회사전휘집에는 한국 교인들의 자급정신이 교회에 단순히 헌금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흉년을 당했을 때 남도(南道)의 형제들이 평북(平北) 신자를 얼마나 많이 도왔는지 모른다.”고 기록했고, 의지 없는 노약자를 위해 양로원을 짓고, 고아들을 위해 고아원을 세우는 이도 있었다. 교회 사업을 위해 토지를 바치는 이, 풍금이나 종과 종각을 세우는 일 등이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특별히 그 중에 이상한 일은 불신자 중에 교회에 연보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라고 하는 놀라운 기록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네비우스 정책에 대한 비판 또한 만만치 않다. 예를 들면, 자치와 자급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오직 자기 교회만을 생각하는 등 네비우스가 강조한 협력의 정책의 결함이라는 지적을 줄곧 받아왔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 개교회주의가 팽배되고 연합 사업이 잘 되지 않는 근원을 여기서 찾으려는 경향이 짙다. 네비우스 선교 정책이 한국 교회의 개교회주의와 교파분열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 대해 미국 북장로교회 해외 선교부 동아시아 담당 총무인 스미스(J.S.Smith)1961국제 선교지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열거한 바 있다.

 

첫째, 한 가지 신학만을 가르쳤기 때문에 자유주의신학이나 극단적 전통신학에 적응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교회의 분열이 생긴다.  둘째, 성경만 가르쳤기 때문에 일반 문화적 교양 지식의 부족으로 성경을 잘못 해석하도록 하였다.  셋째, 교회가 영적으로만 성장하니 일반 사회와 유리된 고립된 공동체가 되었다.  넷째, 신학교육을 지방 교인 정도에 조금 넘는 정도로 시행했으므로 훈련된 유능한 지도자의 대치가 부족하였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다소 수긍이 가는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네비우스 정책을 잘못 시행한 결과였다고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네비우스는 이런 결과를 내다보고 협력과 연합을 누누이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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