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님 성혼식

1960년 4월 11일[음 3.16] 오전 10시 용산구 청파동 1가 71의 3, 전 본부교회에서 700여명의 통일가의 중심식구가 참석한 가운데 참아버님이 친히 장내를 성념으로 성별하신 후 참아버님(음 1920.1.6.)과 참어머님(음1943.1.6.)의 천주사적인 성혼식이 유광렬 문화부장의 사회로 제1차식인 “탕감복귀 부모의식”과 제2차 식인 “영광의 부모의 식”으로 나뉘어 거행되었다.
3가정 성혼식

1960년 4월 16일(음 3.21) 오전 10시, 전 본부교회에서 참부모님의 주례와 인도로 3가정(김원필, 정달옥/유효원,사길자/김영휘,정대화)의 축복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참아버님은 이 결혼식을 “성례식”이라 설명하셨고, 식전에서 이식 전반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며 지시하셨다. 이 축복식은 제1차식인 “만물복귀의식”과 제2차 식인 “자녀복귀의 식과 성례식”으로 진행되었다. 제2차식도 “자녀복귀의 식”과 “성례식”으로 2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36가정 성혼식

1961년 5월 15일(음4.1) 새벽4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약 13시간 동안 서울 청파동 전 본부교회에서 참부모님의 성혼문답과 축도로 33가정의 축복 결혼식인 제1, 제2, 제3 이스라엘 성혼식이 각 가정당 2명의 친인척, 전국 목회자, 서울에 거주하는 중심식구 등 700여명이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참부모님의 주례로 거행되었다.
이는 전년도에 축복을 받은 3가정과 합하여 36가정을 일컬어지는데 제1 이스라엘 가정을 아담가정, 제2이스라엘 가정을 노아가정, 제3이스라엘 가정을 야곱가정으로 부른다.
아담가정은 기혼가정에서 복귀된 표상으로, 노아가정은 약혼단계에서 복귀하는 표상으로 전년도에 축복을 받은 3쌍도 이 가정에 포함되며, 야곱가정은 순결한 남녀가 복귀한 표상으로서 가가 12가정씩으로 구성된다. 36가정의 축복식은 지상은 물론 영계축복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72가정 성혼식

1962년 6월4일(음 5.3)오전 6시 20분부터 오후 5시 20분까지 11시간 동안에 걸쳐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 1가 71-3, 전 본부교회에서 통일가의 중심식구와 친지 등,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72가정 합동 축복식이 참부모님의 주례로 거행되었다. 72쌍은 36쌍의 배수로서 종족범위를 탕감하는 의미를 갖는 축복으로 36가정에 대한 자녀격 위치이기도 하다. 72가정 축복식 때부터 “합동결혼식위원회”가 결성되어 축복식의 모든 것을 준비하고 진행하였으며, 합동결혼식에 대한 취지서가 이때 처음 발표 되었다. 아직까지 발굴된 오디오나 비디오 테이프가 없어(오늘의 섭리역사)와 (성화)지에 기록된 자료를 중심으로 정리한다.
124가정 성혼식

1963년 7월 24일 오전 10시 2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서울시민회관(세종문화회관자리)에서 3500명의 축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124쌍 합동 축복결혼식이 참부모님의 주례로 거행되었다.
이날 식장에서 김현철 내각수반, 원용석 경제기획원장관 등 내외 인사들로부터 보내온 축하화환들이 가득찼다. 축복식 후 신랑신부들은 각각 한 쌍씩 150대의 ‘새나라’자동차에 분승하고 서울시내를 누비는 카퍼레이드를 하였고, 저녁에는 공개적인 축하의 밤 행사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124쌍 합동 축복식은 한국인으로써만 한 마지막 축복이요, 밖으로 활짝문을 열어놓고 공개적으로 개최한 첫 번째 축복이었으며, 또 1960년대부터 시작하여 해마다 연이어 4번째로 행해진 축복행사이기도 하다. 모두 흰옷을 입고 나와 백의민족의 전통을 구현 시킨듯 순백색의 성의 물결을 일으켰다. 한편 협회측은 이날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 합동축복결혼식의 의미를 이해시키기 위해 하객들에게 ‘합동결혼취지서’를 배포했다.
430가정 성혼식

1968년 2월 22일 오후 2시 서울 시민회관에서 3천 여명의 가족과 내빈이 입추의 여지없이 만장을 이루는 가운데 436쌍 합동축복 결혼식이 참부모님의 주례로 거행되었다. 이번 축복에서는 일본 통일교회 협회장인 구보끼 오사미 가정이 외국가정으로 처음으로 참여하여 축복을 받았다. 일본에서의 22통을 포함한 외국 교회에서의 34통 국내에서 이효상 국회의장을 비롯한 각 도지사와 전국 각 교회에서 모두 120통의 축전이 들어왔으며 국내의 김종필 공화당의장과 일본의 명사 사사가와 옹 등 국내외 정상급 인물들로부터 약 20개의 화환이 들어와 화려하게 식장을 장식하였다. 이번 합동결혼식 이후에도 25대의 관광버스와 수십 대의 자동차로 서울 시내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퍼레이드 행렬은 시민회관 출발, 남대문, 삼각지, 이태원, 타워호텔을 거쳐 광희동 육교밑을 빠져나가 워커힐로 향하였다. 여기서 잠깐 휴식을 취한 행렬은 다시 퇴계로 5가로 나와 종로5가 원남동 로터리를 싸고돌아 중앙청 앞을 거쳐 시민회관으로 돌아오는 단거리 신혼여행이었다. 이때도 합동결혼식 취지문이 반포되었다. 430가정의 축복결혼에 대해서는 현재 발굴된 오디오나 비디오 테이프 자료가 없어 기록된 2차 자료에 근거하여 정리한다.
777가정 국제합동결혼식

1970년 10월21일 오전10시30분 서울장충체육관에서1만5천 여명의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초만원을 이룬 가운데 777쌍 합동축복결혼식이 참부모님 양위분의 주례로 거행되었다. 이 축복식에서 축복을 받은 실직적 가정의수는 한국은 5백 39쌍 일본 2백35쌍 구미16쌍 도합 790쌍이 되나 통상적으로 777가정이라고 불리어 지고 있다. 이번식은 최초로 거행되는 국제합동축복결혼식으로 세계형의 축복이었다. 축복식후 하오2시에서 4시에 걸친 카퍼레이드는 앞뒤에서의 해군 군악대 축하연주속에 대형버스 42대를 포함한 50대의 자동차가 참가하여 장춘체육관을 출발하여 여의도를 일주하고 신촌,서대문,사직터널을 통과 북악스카이웨이를 돌아 돈암동을 지나 다시장충체육관에 이르는 환상코스를 장엄스럽게 누비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역시 1만5천명이 들어선 가운데 장충체육관에서 곽규석씨의 사회로 다채로운 축하 행사가 열렸다.
1800가정 국제합동결혼식

1975년 2월 8일 오후 1시 30분까지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신랑신부의 가족, 친지, 내외귀분 등 1만3천 여명의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1800가정국제합동결혼식이 참부모님의 주례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본격적으로 국제적 축복의 역사가 시작된 이번 축복을 국가별로 구분해보면 한국 8백92쌍(제일교포 18쌍 포함), 일본 8백 11쌍, 구미제국 1백 11쌍, 자유중국 2쌍. 이렇게 실제로 축복받은 총 수는 1천 8백 16쌍이었다.
이 가운데서 국제적으로 맺어진 신랑신부는 한국과 일본이 18쌍, 한국과 미국이 7쌍, 한국과 오스트리아가 1쌍, 구미가 49쌍. 합계 87쌍인데, 참가국은 한국, 일본, 중국, 미국, 영국, 독일, 불란서, 이태리, 화란, 오스트레일리아, 아일랜드, 트리니다드 20개국이었다. 축하화환은 신도성 통일원장을 비롯하여 각계 각층 40여명으로부터 들어와 식장일대를 꽃으로 장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날 카퍼레이드 코스는 777쌍 때와 유사했다. 한편 이날 10시까지 계속된 축하의 밤은 곽규석씨가 사회를 맡았고 MBC 전속 여대영 악단의 반주로 인기가수들의 축하와 각국 신랑 신부 대표들의 출연으로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되었다.
6000가정 국제합동결혼식

1982년 10월 14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1시 20분까지 서울 잠실종합실내체육관에서 85개국이 참가한 6,000쌍(5,837)의 신랑신부들과 내외귀분 양가부모 친척 등 1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세계 역사상 최대규모인 6000가정 국제합동축복식이 ‘이상가정을 통한 세계평화’라는 주제아래 참부모님의 주례로 성대히 거행되었다. 이번 축복식에는 한국 1,500쌍, 일본 3,600쌍, 동남아(중국포함) 90쌍, 미국 150쌍, 중남미 100쌍, 유럽 400쌍, 아프리카 60쌍 등이 참가했다. 식장에는 주례단 앞에 한문으로 통일교회국제합동결혼식, 영문으로 THE UNIFICATION CHURCH HOLY WEDDING 이라고 쓴 표지판이 장내를 압도했다. 그리고 그 바로 건너편에서 일본측에서 마련한 ‘국제합동결혼식 경축합니다. 문선명 선생님께 감사하는 부모회 일본대표 일동’ 이라는 일본어로 된 문구가 붙어 있었다.
6500가정 국제합동결혼식

1988년 10월 30일 10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 까지 경기도 용인에 자리한 ㈜일화연수원에서 전세계 17개국에서 온 6,516쌍의 신랑신부와 30쌍의 들러리 그리고 소수의 축복 선배가정 대표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6,500가정 국제합동결혼식이 참부모님의 주례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본 국제합동결혼식에서는 17개국의 선남선녀들이 참석했으나 한국과 일본의 국제결혼이 그 주류를 이루었다.
한국과 일본의 젊은 2세들의 교차결혼을 통해 원수지간의 담을 사랑으로 허물고 서로 하나되어 세계평화의 초석을 다지는 의미를 갖는 이 결혼식에는 한국신랑과 일본신부가 1435쌍, 한국신부와 일본신랑이 973쌍, 일본신랑과 일본신부가 3660쌍, 한국신랑과 한국신부가 10쌍이었으며 미국, 호주, 독일, 프랑스, 아르헨티나, 가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대만, 홍콩, 스리랑카 등 15개국에서 100여 쌍이 참석하기도 했다. 이 결혼식은 여러가지 면에서 많은 이변을 낳았다. 그 첫째가 사상최대규모의 결혼식이라는 점이며, 둘째는 신랑신부의 한국입국과 결혼식장 도착까지 모든 것이 전격적으로 짧은 기간 내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며 섯째로는 대부분의 신랑신부가 사진으로 매칭이 이루어져, 결혼식 하루 전에야 실제 신랑신부를 만날 수 있었다.
3만쌍 국제합동축복결혼식

1992년 8월 25일 오전 11시,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3만쌍 국제합동결혼식’이 3만여 쌍의 신랑 신부와 6만 여명의 하객들이 올림픽 주경기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엄숙하고도 장엄하게 거행되었다. 참부모님의 주례로 거행된 3만쌍 국제합동결혼식은 제1회 세계문화체육대전의 일환으로 축복의 세계화를 여는 첫 번째 축복행사였다. 한편 항공편 예약 등으로 내한하지 못한 6개국은 MBC 미디어텍의 협조로 세계최초 위성중계결혼식을 올렸다. 특히 이날 예식장에는 일본 NHK등 국내외 취재진 650명이 열띤 취재의 경쟁을 벌였으며, 이번 축복식 참가 선언으로 일본열도를 들끓게 했던 일본의 인기배우이자 가수인 사꾸라 준꼬와 리듬체조선수인 야마자끼 히로꼬 부부가 나란히 앉아 국내와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기도 했다.
36만쌍 국제합동축복결혼식

1995년 8월 25일 오전 11시, 인공위성을 통한 직, 간접 동시 중계를 통해 서울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을 비롯한 전세계 160개국 553개 장소에서 ‘36만쌍 국제합동결혼식’이 참부모님의 주례로 거행되었다. 제2회 세계문화체육대전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축복행사는 축복의 세계화 시대를 여는 두 번째 축복이었으며, 8월 23일에 영인축복을 받은 충모님 가정, 대모님 가정, 그리고 대형님 가정도 이번 축복에 동참했다.
4천만쌍 국제합동축복결혼식

1997년 11월 29일 오전 11시,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에 있는 RFK스타디움에서 전세계를 인공위성으로 연결하는 가운데 360만쌍과 3600만쌍을 합한 3960만쌍의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이 참부모님의 주례로 거행되었다.
제3회 세계문화체육대전의 일환으로 거행된 이번 축복식은 ‘BLESSING 97’의 이름으로 열렸으며 32억명의 영인 축복도 함께 있었다. 참부모님께서는 후에 이 축복식을 ‘4000만쌍 국제합동 축복결혼식’으로 공식 명명하셨다.
이번 축복식에서는 축복의 역사가운데 처음으로 흰두교회 스와미 사치다난다를 시작으로 러시아 정교회의 얀 추기경, 불교의 설정스님, 네션이브 이슬람의 미니스티 루이스 메라칸, 시크교의 바하이 키르팔 싱, 로마 카톨릭의 프란시스 사비에르 드사 박사 등 세계 6대 종교 대표자들이 각자의 종교의식으로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 하늘 앞에 축복 결혼식전을 아뢰는 고천문이 선포되었다.
3억 6천만쌍 제1차 국제합동축복결혼식

1998년 6월 13일 미국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참부모님의 주례로 3억 6천만쌍의 제1차 국제합동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전세계 195개국에 인공위성을 통해 중계된 이번 축복결혼식은 전세계 1억 2천만쌍이 직-간접적으로 참석한 가운데 ‘BLESSING 98’의 이름으로 개최되었다. 또한 문희진님과 이혜신님의 영인축복과 예수, 공자, 석가, 마호메트, 소크라테스, 등 5대 성인의 영-육계 축복, 하늘편과 사탄편을 대표한 34명의 영인 축복, 그리고 92억명의 영인축복도 동시에 이번 축복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번 축복행사로 이미 영계에서 예비축복을 받은 68억명을 포함하여 160억명의 영인이 축복을 받게 되었다.
한편 이 축복의 행사는 영-육계를 연결하는 통일 축복식의 의미를 가지고 거행되었으며, 가장 큰 초교파적 축복의 성격도 내포하고 있다. 이에 걸맞게 77개 기성교회 성가대 2,000여명으로 구성된 ‘2,000-초교파성가대’가 AMAZING GRACE’를 불러 하나님과 참사랑을 찬양하기도 했다.
3억 6천만쌍 제2차 국제합동축복결혼식

1999년 2월 7일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전세계 193개국에 직-간접적 위성과 인터넷 중계를 통하여 이루어진 3억 6천만쌍 국제합동결혼식이 참부모님의 주례로 거행되었다. 이 축복식 전에는 지금까지 영인 축복을 받았던 240억명 중에서 200억명이 자신들의 상대를 데려와서 부부로 축복을 받았고, 160억 명의 영인이 새롭게 영인 축복을 받게 되었다.
4억쌍 제1차 국제합동축복결혼식

2000년 2월 13일 오후 1시 서울 올림픽 주 경기장에서 전 세계 193개국에 직-간접 위성중계를 통하여 수천만쌍이 참석한 가운데 4억쌍 제2차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이 참부모님의 주례로 거행되었다. 이번 축복식에는 문혜진님과 리영신님의 영인 축복을 비롯하여 축복을 받기 전에 어린아이로 승화한 축복2세 및 3세 109쌍에 대한 영인 축복과 참부모님의 손녀이신 문신미님-이형진님도 축복을 받게 되었다.
4억쌍 제2차 국제합동축복결혼식

2001년 1월 27일, 미국 뉴욕의 UN본부에서 세계 135개국 210쌍의 선남선녀들과 전세계 193개국에서 수천쌍이 직-간접 인공위성 중계를 통해 참석한 가운데 4억쌍 제2차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이 참부모님의 주례로 거행되었다. UN본부에 참석한 신랑신부들은 각각 자국의 민속 고유의 전통의상을 입고 축복식전에 참여했다. 하나님 왕권 즉위식 이후 처음으로 거행된 이번 축복식은 제7회 세계문화체육대전의 일환으로 거행되었으며, 참부모님께서는 한국 전통 국왕 의상인 곤룡포와 왕관을 쓰시고 이 축복식을 주례하셨다. 이날의 축복식은 ‘세계평화축복식’으로 명명되었으며, 이 축복식을 전후해서 UN본부와 힐튼호텔에서는 ‘문명간의 대화와 조화’를 주제로 한 국제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4억쌍 제3차 국제합동축복결혼식

2002년 2월 16일 오후 3시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미국, 이란 등 186개국 주요 도시에 인공위성과 인터넷을 통해 중계된 가운데 ‘4억쌍 제3차 국제합동 축복결혼식’이 참부모님의 주례로 거행되었다. 천일국의 대축제인 ‘세계문화체육대전 2002’의 한 행사로 열린 이날 축복식은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3천 5백 여 쌍의 신랑신부와 국내외 축하객 등 1만 2천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이번 축복식부터 참부모님께서 서로 양손을 마주잡으시고 축도를 하셨다.


기타 축복식